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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Warning:
Category:
Fandom:
Relationships:
Characters:
Additional Tags:
Language:
한국어
Series:
Part 2 of Son and Dad
Stats:
Published:
2026-03-06
Words:
7,549
Chapters:
1/1
Comments:
1
Kudos:
11
Bookmarks:
1
Hits:
387

Pretty **** job of Roleplaying

Summary:

색다른 시도를 또 해보는 두 사람

Notes:

시리즈 기능을 뒤늦게 알았어요
https://x.com/winning_cp/status/1975826037755027556?s=20
이 그림에서 이어집니다

Work Text:


ㅤ“…그니까 이딴 게 네가 생각한 코스튬 플레이야?”

ㅤ소파에 누워 깍지 낀 양손을 명치에 고이 올려둔 샤를이 말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오른편을 봤다가,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의 모습에 아예 고개를 돌렸다. 뒤로 넘어지며 부딪친 뒤통수는 여전히 얼얼했다. 솔직히 거기에 다른 의미가 없다고도 못 하겠다.

ㅤ그러니까, 도대체 누가 이걸 코스튬 플레이로 생각하겠냐는 거다. 용기를 내고 다시 상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향한 샤를이 그때까지도 여전한 연인의 경찰 제복 차림에 눈을 질끈 감았다.

ㅤ다음 레이스까지 2주가 남은 어느 주말이었다. 평소대로 레이스가 끝난 주 금요일에는 오스카가 잉글랜드로, 그다음 주 화요일에는 샤를이 마라넬로로 떠나는 그 사이 어딘가. 오늘 밤늦게 들어갈 것 같다는 오스카의 연락에 그러려니 하던 샤를을 반긴 게 이것이다. 어두컴컴한 거실 불을 켜자마자 대뜸 나타난 경찰 수사관의 모습에 샤를은 까무러칠 듯이 놀라다 못해 엎어졌고, 그 뒤에 벌어진 게 지금이었다.

ㅤ“제복이 가장 클래식하다고 생각했어.”

ㅤ“옷 입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니, 그것도 중요한데, 누가 집에서 이러고 기다리고 있냐고.”

ㅤ“일단은… 서프라이즈였는데.”

ㅤ오스카가 머쓱해하며 말했다. 나름대로 죄를 아는 모습이었다. POLICE가 써 붙은 옷을 입고서 곧이곧대로 자백하는 꼴에 샤를은 속이 끓는 것을 느꼈다. 도통 어디로 튀는지 모르겠는 오스카의 발상에 어울리다가 자신도 그리됐는지, 눈을 떴을 때부터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깜찍한 거짓말로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는 게 귀엽다가도 그게 경찰복 입고 불 다 꺼진 집에서 연인을 기다리기라는 게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ㅤ“전에 색다른 거 해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게 걸려서.”

ㅤ물론 이렇게 오락가락할 필요조차 없는 것도 있었다. 샤를은 도대체 언제적 일을 끌어오는 것이며, 그 색다른 것에 대한 재해석은 또 언제쯤 그만둘 것이냐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자신이 별생각 없이 던진 말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오스카의 세심함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말리면 지는 거다. 샤를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것뿐이었다.

ㅤ“그래서 어디까지 준비했는데? 한 번 봐봐.”

ㅤ비척비척 몸을 일으킨 샤를이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하기로 한 결심한 너드가 대충 했을 리 없다. 이 또한 오스카를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 이거?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한 오스카는 순순히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들을 꺼냈다. 쇠처럼 꾸민 플라스틱 재질의 수갑에 역시 지금이라도 그를 쫓아낼까 고민하던 샤를은 호루라기에서 괜히 숨을 크게 들이쉬는 척, 웃음을 참았다가 권총 홀스터와 그곳에 들어있는 가짜 권총을 보고서는 결국 무너졌다.

ㅤ“Oh my goodness, Oscar!”

ㅤ너 진짜 진심이야?? 타박하듯 높아진 목소리에는 이 상황이 웃겨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의 관대함이 배어있었다. 하기로 결심한 그가 대충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휘말리기 쉬운 너드의 사고방식도 경계했으나 그럼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게 눈앞에 들이밀어질 때면 샤를은 웃음이 터지고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오스카가 왜, 뭐? 하면서 항변했지만 웃는 얼굴인 건 마찬가지였다.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움직여서 손에 쥔 가짜 권총은 심지어 방아쇠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조잡함과 적당한 것이 없는 준비성에 샤를이 또 한 번 폭소했다.

ㅤ“아마존에서 안 파는 게 없더라. 곧 핼러윈이라 그런가?”

ㅤ오스카가 마치 남 일처럼 말했다. 소파 등받이에 파묻히듯 몸을 기댄 샤를이 다음으로 집어 든 건 수갑이었다. 플라스틱 권총보다는 훨씬 그럴듯했지만 조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ㅤ“솔직하게 말해, 이 정도면 그냥 네가 하고 싶었던 거잖아.”

ㅤ“음… 그럴지도.”

ㅤ오스카가 모자챙을 매만졌다. 볼캡과 다르게 챙이 짧은 것은 엉성하지만 각이 잡혀 있었다. 샤를은 내리깐 눈으로 앞에 있는 연인을 다시 한번 살폈다. 유달리 두꺼운 목에 맞춰 옷을 입는 오스카의 핏은 꽤 독특한 편에 속했다. 등 근육에 딱 붙어서 맞게 산 거 아닌가 싶은 티셔츠는 항상 허리쯤에서 품이 크게 남아 나풀거렸다. 만약 제게 그런 핏이 나온다면 당장 허리선을 조이는 수선을 맡겼을 것이다. 실제로 샤를은 몇 번 그에게 수선을 제의했으나 오스카는 개의치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ㅤ꼴에 제복이라고 바지에 넣어 입어도 헐렁한 게 티가 나는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셔츠의 재봉선 때문인지 등 근육과 억지로 끼워 맞춘 어깨선의 위화감이 유독 심했다. 하기야 특별한 자리가 아니면 정장은커녕 와이셔츠도 꺼내지 않는 남자였다. 살짝 시선을 옮기면 셔츠의 반팔 아래로 햇볕에 탄 팔뚝이 보였다. 컨셉에 충실해 메탈 시계까지 찬 손목을 자연스레 훑던 샤를이 티가 나지 않게끔 앉은 자세를 고쳤다.

ㅤ지지 않겠다는 알 수 없는 승부욕이 사그라들고 본 남자의 행색은 여전히 우스웠는데, 그게 조금, 구미가 당겼다. 이러나저러나 해도 이 모든 것들은 오스카가 자신과 섹스할 생각으로 준비한 것이다. 성욕이 별로 없어 보이는 남자에게 원해지는 건 솔직히 기분 좋았다. 레이스 밖에서 오스카는 제게 이길 생각이 없었고, 샤를이라고 딱히 매 순간 우위를 차지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앞서 있다는 감각은 그 자체로 미소가 지어지고는 했다.

ㅤ“준비한 시나리오는 뭐였어?”

ㅤ최대한 저급하지 않을 말을 골랐다. 그놈의 색다른 시도에 어울려줄 마음이 들었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입에 올리기는 좀 그랬다. 주도권보다는 수치심의 문제였다. 직장 동료, 그것도 심지어 아들이라고 웃고 떠들던 네 살 어린 드라이버에게 넘어간 것도 가끔씩 이게 맞나 싶은 순간이 오는데, 롤플레잉은 역시 벽이 높았다. PR에는 스킬과 요령이 넘치는 샤를이었으나 알파벳이 뒤바뀐 RP, 그것도 섹스에 관해서는 진부하고 유치한 것밖에 안 떠올랐다.

ㅤ행여나 오스카가 알아듣지 못할 것을 우려한 샤를이 슬리퍼의 끝으로 그의 발목 안쪽을 툭 건드렸다. 별생각 없이 시선을 아래로 떨군 오스카가 고개를 들었을 땐 웃음이 가득했다. 평소처럼 대화하던 차분함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들뜬 게 도저히 숨겨지지 않는 어리숙함도 잠시 이번에는 제대로 모자를 고쳐 쓴 남자가 한껏 진지한 표정을 꾸며냈다. 샤를은 순순히 소파에 기댄 몸을 깔기 편하게 누웠다. 오스카의 무릎이 소파를 디뎠고, 샤를의 마음 어딘가에서 슬레이트가 찰칵 내려간다.

 

 

ㅤ#take.1

ㅤ“어제 오후 8시 16분에 어디 있었어?”

ㅤ노골적으로 목 옆으로 파고든 남자가 귓가에 속삭이듯 물었다.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면 목 뒷덜미에 간지러운 숨결이 닿았다.

ㅤ“기억 안 나.”

ㅤ“거짓말하지 말고.”

ㅤ“진짜 기억 안 나. 알잖아, 나 그렇게 세세한 건 기억 못 하는 거.”

ㅤ제복을 입은 남자의 눈이 가늘어진다. 샤를은 이 상황이 순수하게 웃기면서도 별거 아닌 문답에 쉽게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럭저럭 취조의 형태를 띠고 있는 상황극이 매니악해지기까지 몇 걸음 남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억압받는 것에 흥분하는 취미 같은 건 없었음에도 지금만큼은 기대가 됐다.

ㅤ사실은,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것이다.

ㅤ침대에서 제멋대로 구는 오스카가.

ㅤ오스카의 섹스는 항상 배려심이 넘쳤다. 대부분은 사랑하는 연인이 선보일 법한 다정이었고, 가끔은 같은 드라이버로서의 관리였다. 심심하진 않았다. 싫지도 않았다. 오스카는 고분고분했기에 재미를 찾을 구석이 많았다. 이를테면 공항까지 한 시간 남은 걸 핑계로 수음에서 멈출 때. 아쉬움이 질질 흘러넘치는 눈을 하고도 괜찮다고 넘어가는 남자는 아주 가끔씩 홍조가 빠지지 않는 얼굴로 간절하게 달라붙을 때가 있었다.

ㅤ될 때와 안 될 때를 적절히 구분해서 덤비는 오스카를 손안에 두고 있는 샤를이었지만 그럼에도 한 번씩 혼자서 선을 넘는 오스카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색다른 거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는 그 연장선이었다. 끽해야 체위 정도를 생각했으나 이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말로 선을 넘으면 그 즉시 걷어차 버리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였다. 변덕은 울타리 안쪽에 있는 사람만 아는 샤를의 악취미였다.

ㅤ“마지막이야, 어제 저녁에 뭐 했어.”

ㅤ“피아노를 잠깐 쳤어.”

ㅤ“밤에 피아노 안 치잖아.”

ㅤ“애인이 있는데, 피아노랑 사진 찍었다고 해서 갑자기 끌렸어.”

ㅤ“…그렇게 말해도 안 돼.”

ㅤ“내가 보기엔 된 것 같은데.”

ㅤ능청스레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몸이 뒤집혔다. 다른 때라면 뒤에서 하려나 보다 싶은 것도 상황이 이러니 범인이 되어 제압당하는 것 같았다. 등 위로는 허리 어딘가에 마운트 하듯 앉은 오스카의 무게가 느껴졌다. 적당히 옷을 벗길 때가 됐다 싶은 것도 잠깐이었다. 편하게 쿠션을 끌어안고 있던 오른팔이 등 뒤로 끌려 나와 붙잡혔다.

ㅤ“오스카?”

ㅤ반사적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서 본 오스카는 덤덤한 얼굴로 꺼내둔 수갑을 집어 들고 있었다. 이윽고 왼팔까지 등 뒤로 이끌린다. 미약하게 저항했으나 딱히 도움 되진 않았다. 수갑의 이음새가 맞물리자 사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그럴듯하게 울렸다. 쿠션에 얼굴이 처박힌 샤를은 문득 생각했다.

ㅤ이게 롤플레잉이라는 건 아는데

ㅤ몰입감이 확 사는 것도 알겠는데

ㅤ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나?

ㅤ수갑을 쓸 줄은 알았다. 못 이기는 척 팔을 내줄 의향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는 아니었다. 앞으로 있을 전개도 끽해야 몸수색 같은 싸구려 음담패설 정도를 예상했지, 이런, 이렇게… 진짜 범죄자처럼 수갑을 차는 건 계산에 없었다.

ㅤ애초에 이게 맞나? 섹스에 이 정도 디테일이 필요한 게 맞아? 자문해 봐도 상황극은 오늘이 처음인 자신이 알 리 없었다. 그리고 오스카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고민해 봐야 답이 없다는 걸 안 샤를이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뭐가 됐든 오스카의 기행에 말리는 게 지는 거라는 걸 알고 있지 않았던가. 회로가 단순해지면 결론은 쉽게 나왔다.

ㅤ여기서 몰입을 깨는 게 나일 수는 없다.

ㅤ“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지금부터 하는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어.”

ㅤ오스카는 수갑으로 묶인 손목을 고삐 삼아 어깨를 집어 올리듯 끌어서는 다시 한번 고개를 쿠션에 처박도록 했다. 불편함인지 불쾌함인지 알 수 없는 게 흥분과 뒤섞인다. 샤를은 애써 그중에서 기대감을 골라내려 했다. 당장은 그게 흥분과 제일 맞닿아 있었다.

ㅤ“이래도 정말 말 안 할 거야?”

ㅤ“뭘 묻는지 모르겠다니까….”

ㅤ“그럴 리 없는데.”

ㅤ쓰러져 있는 등 위로 오스카가 자신의 상체를 바짝 붙였다. 의식적으로 눈을 감은 샤를은 감각에 집중하려 했다. 귓가에서 울리는 낮은 목소리나, 그의 허벅지가 자신의 허리를 얼마나 조이고 있는지 같든 것들. 가장 익숙한 건 손목을 붙잡고 있는 오스카의 손아귀였다. 손바닥에 비해 손가락이 짧은 남자는 생각하는 것보다 손이 작았고, 보이는 것에 비해 아귀힘이 억셌다.

ㅤ“너도 알잖아,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거.”

ㅤ어떤 기억들은 감각을 통해 되살아나고는 한다. 요령이 없었기에 천박하게 굴었던 남자의 밑에서 전에 없이 느꼈던 연애 초창기의 섹스까지 흘러간 샤를은 이대로도 괜찮다는 기분을 느꼈다. 이 정도면 아직 가능했다. 신체의 불편함에 그럭저럭 적응하고 나면 강압적인 태도의 오스카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사실은 딱 그것만 괜찮았다. 어쨌든 보고 싶었던 제멋대로의 모습이었다.

ㅤ“샤를.”

ㅤ“…….”

ㅤ“마지막으로 물을게.”

ㅤ“그래.”

ㅤ샤를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의문을 한차례 눌러놓고 나니 이번에야말로 이 상황극에 오스카만큼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팔등으로 짓누르는 걸로는 부족했는지 오스카가 옷깃을 끌어지게 잡아당겼다. 올가미처럼 변한 직물이 목을 조였다. 반사적으로 턱을 든 샤를이 필사적으로 숨을 골랐다. 그러지 않고서는 가슴 속에서부터 끓는 불쾌함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몰입을 깨는 게 나일 수는 없다.

ㅤ“5일 전에 내가 사다 둔 팀탐, 안 먹은 거 확실해?”

ㅤ몰입을 깨는 게 나일 수는, 아니 잠깐만.

ㅤ“영국 가기 전에 냉장고에 있는 거 보고 갔어. 네가 먹었지.”

ㅤ“여태까지 취조한 게 그거야?”

ㅤ“응?”

ㅤ“아까 묵비권이니, 변호사니 어쩌고 했던 것도 팀탐 때문이냐고.”

ㅤ“아니, 그건 미란다 원칙이라고 용의자를 체포하거나 신문하기 전에 피의자 권리를…… 음, 그래,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었구나.”

ㅤ그의 체중에 힘이 풀린 것을 느낀 샤를이 버둥거렸다. 그러자 오스카는 계속 마운트를 취하던 직전과 달리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곧바로 몸을 일으킨 샤를은 볼품없이 늘어난 티셔츠의 목을 다시 앞쪽으로 잡아당기고, 다음에는 수갑을 풀었다. 조였다고 해도 헐렁한 가짜 수갑은 대충 이음새를 딸깍이는 것만으로도 쉽게 풀렸다. 빠르게 자유를 되찾은 샤를은 일련의 과정이 끝날 동안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는 눈앞의 오스카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ㅤ아무리 그래도 경찰 제복 차림을 한 F1드라이버를 내쫓을 순 없었는데, 이번엔 진짜로 쉽게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 목까지 졸라놓으며 상황의 디테일을 뽐내놓고 대사가 이따위인 건 아무리 생각해도 오스카의 잘못이 맞았다. 할 수만 있다면 줄 수 있는 페널티를 다 쏟아붓고 싶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안 오스카가 꾹 다문 입매를 조심히 움직였다.

ㅤ“…네가 먹은 거 아니었어?”

ㅤ오스카의 말이 끝나자마자 샤를이 숨을 들이켜 한 턴을 더 참았다. 끝나지 않은 팀탐 취조에 분노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ㅤ“내가 먹은 거 같긴 해,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ㅤ“그렇긴 하지.”

ㅤ빠르게 수긍한 오스카가 고개까지 끄덕이며 말했다. 그 반응에 샤를은 처음으로 안도했다. 내심 섹스가 아니라 팀탐의 행방을 캐묻고자 이 짓을 벌인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오스카가 눈을 굴렸다.

ㅤ“음, 그럼 그 부분은 빼고 계속할까?”

ㅤ말을 이은 남자에게서는 눈치 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즈음 샤를도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일전에 말 같지도 않았던 대디플은 자신이 레오와 함께 게스트룸에서 자는 것으로 끝이 났다. 씻고 온 오스카가 아무 일도 없던 척, 은근슬쩍 침대 위로 올라왔지만 그뿐이었다. 보아하니 이번에도 그렇게 될까 조금은 신경 쓰는 모양이었다. 이 엔딩까지도 제 눈앞에서 대놓고 눈치 보는 오스카를 보며 기억해냈지만 입 밖에 내진 않기로 했다. 오스카는 예전부터 오래 고민해서 좋은 결론을 내놓은 적 없는 연인이었고, 거기에 수없이도 데인 자신이었으나 이번만큼은 그가 머리 뜨거워지든 말든 놔둘 생각이었다. 오늘은 역시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ㅤ쉽게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내쫓고 싶다는 말도 전부 진심이다. 근데 그것보다 하고 싶었다. 기껏 목을 졸라놓고 팀탐 같은 소리를 하는 행위에 김빠진 것보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서 몸이 닿고 자극과 흥분을 기대하며 쌓인 게 더 많았다.

ㅤ“할 거면 다른 걸로 하자. 묶이는 건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아.”

ㅤ합리적인 제안을 하는 듯, 밑으로는 조급함을 숨겼다. 손안에서 절그럭거리던 수갑을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오스카는 눈썹을 치켜들다가도 금방 어깨를 으쓱였다.

ㅤ“그래, 뭐, 수갑 없이도 할 수는 있지.”

ㅤ“아니, 그냥 역할 자체를 바꾸자고.”

ㅤ“그 말은…….”

ㅤ“아예 다른 걸로 하자는 뜻이야.”

ㅤ애초에 나는 제복 판타지도 없거든? 그의 생각이 더 의미심장해지기 전에 샤를이 붙잡았다. 그러면 오스카는 아하, 같은 소리를 하며 또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않는 샤를이었으나 오스카가 이럴 때마다 그의 안에서 샤를 르클레르는 도대체 어떤 이미지인지 궁금했다. 연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 알고 있다는 듯 굴지 않는 건 좋은데, 편견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모든 게 수용되니 그것대로 복잡한 기분이었다. 아니면 편견이 없는 게 편견이라든가.

ㅤ“나는 차라리 익숙한 게 더 재밌을 것 같아.”

ㅤ뭐가 됐든 중요한 건 눈앞의 너드가 더 이상한 짓을 못 하도록 틀어막는 일이었다. 샤를이 소파에서 일어날 때까지 가만히 앉아만 있던 오스카가 몸에 힘을 풀었다.

ㅤ“생각해 둔 게 있나 보네?”

ㅤ샤를은 아닌 척 빼지 않고 정직하게 웃었다.

ㅤ“옷 줄 테니까 씻는 동안 준비하고 있어.”

 

 

*

 

ㅤ“널 기다리는 동안 생각해 봤는데,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ㅤ“뭘.”

ㅤ심드렁하게 대답한 샤를은 침실과 화장실을 잇는 복도 중간에 위치한 화장대의 거울로 자신의 머리를 확인했다. 드라이기 바람으로 말린 머리에는 미약한 물기가 남아있었다. PR로 길러지며 자연스러운 꾸밈이 몸에 밴 남자의 준비가 온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 오스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ㅤ“레이스 엔지니어랑 이런 짓이 하고 싶었던 거야?”

ㅤ발칙한 물음이었다. 그제야 샤를이 상대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팔짱 낀 채 복도의 입구가 되는 문틀에 기대 서 있는 오스카는 뚱한 얼굴이었다. 원래도 졸려 보이는 눈이 아예 대놓고 반만 뜨여서는 조용한 항의를 보내고 있었다. 후드 모자가 달린 남색 맨투맨을 입고 있는 남자의 목에는 검은색 블루투스 헤드셋이 걸려 있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놓고 간 수많은 물건이자 당장 공학용 계산기와 랩탑을 들고 기록을 재러 가도 이상해할 것 없는 엔지니어의 모습이었다. 인스타에서 가끔 뜨는 팬메이드 쇼츠를 보기 한참 전부터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어울리면 웃음밖엔 안 나왔다.

ㅤ“사람들이 왜 이걸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ㅤ오스카는 정말로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ㅤ“놀리는 거 아니니까 진지하게 들어. 후드를 입었다고 그런 분위기가 나는 것도 타고난 재능이야. 누군 그런 느낌을 내고 싶어도 못 한다고.”

ㅤ샤를은 일부러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ㅤ“그래서 너는 어떤데.”

ㅤ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오스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샤를은 전원이 꺼진 드라이기를 다시 들어 올리는 대신에 다가온 연인을 마주 보고 섰다.

ㅤ“다음 달 데이트룩을 후드 달린 맨투맨으로 통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말해줄게.”

ㅤ“알아들었어.”

ㅤ대답과 함께 허리에 손이 올라왔다.

ㅤ“할 건 해야지.”

ㅤ샤를이 몸을 뒤로 뺐다. 자연스럽게 눈을 감으려던 오스카가 덩달아 멈춰 섰다.

ㅤ“…진짜 해?”

ㅤ“시작한 게 누구였는데.”

ㅤ얄쌍한 입술이 꾹 닫힌 채 좌우로 이리저리 움직인다. 머쓱한 표정 위로 은근슬쩍 넘어가려던 생각이 그대로 보였다. 어떻게든 무마하고 싶어 하는 걸 알면서도 샤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ㅤ“이건 정말 모르겠어서 그래. 레이스 엔지니어라는 건… 일터의 사람이잖아.”

ㅤ힘 빠지게 웃은 오스카가 말했다. 그 나이에 아빠 소리를 들어도 괜찮다며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려던 사람치고는 지극히 정상적인 이유였다. 다른 때라면 오스카보다 먼저 레이스 엔지니어랑 왜 그런 걸 해야 하냐며 펄쩍 뛰었을 샤를은 시침 떼고서는 고개만 까닥였다.

ㅤ“오피스 스릴 몰라?”

ㅤ“몰라.”

ㅤ빠르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시선은 상대의 가슴팍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레이스 엔지니어와 드라이버의 롤플레잉을 하겠답시고 샤를은 페라리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채였다. 유니폼을 입고서 하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아주 가끔씩 마음이 너무 급해서 다른 거 생각하기가 싫을 때면 샤를은 딱 장소만 가렸다. 다르게 말해서 뭘 입고 있고, 뭘 하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정도가 되어야지만 팀의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서 했다.

ㅤ“…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ㅤ기다리니 말이 덧붙었다. 저보다 훨씬 좋은 기억력을 가진 남자는 유니폼에 얽힌 추억을 그새 전부 되감아 본 게 분명했다. 빠르게 입장을 바꾼 오스카를 질책하려다 관뒀다. 그의 개인실에서 정신없던 30분과 이후에 유니폼을 바꿔입을 뻔했던 5분의 소동은 샤를에게도 써먹을 곳이 많은 기억이었다. 발을 움직여 화장대에 걸터앉듯 기댔다. 간단한 스킨로션 제품만 둔 그곳은 언제든 사람 하나가 앉을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샤를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는 오스카의 손이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샤를의 허벅지를 받쳤다. 유니폼을 입고서 하는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니듯 샤워를 마치고 침대까지 걸어오는 순간을 못 버티고 중간에서 붙어먹은 것도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ㅤ“자, 상상해 봐. 다음 프랙티스까지는 2시간이 남았고, 너랑 나는 내 개인실에서 셋업으로 싸우다가 흥분하는 거야.”

ㅤ“그래, 완전히 알겠네.”

ㅤ충동적으로 결정한 장소와 상황 설정이었으나 입 밖에 내고 보니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오스카라고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위치상 어쩔 수 없이 거울 속 자신을 보게 되는 일이 잦은 그는 복도에서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지금은 그딴 거 상관없이 빨리하고 싶은 게 느껴졌다. 허벅지를 쓸어내리는 손바닥이 벌써부터 뜨거웠다. 직전에 키스를 실패한 남자가 두 번째로 파고드는 것은 목덜미였다. 이번엔 뒤로 빼는 것 없이 순순히 내주려던 것도 잠시, 뒤늦게 무언가 생각난 샤를이 그를 막아섰다.

ㅤ“세이프 키워드 정하자. 아니다 싶을 때 언제든 그만둘 수 있게.”

ㅤ손목이 묶이고 억지로 아래에 짓눌려 통제되던 감각은 다시 생각해도 불쾌했다.

ㅤ“난 딱히 필요 없어. 네 마음대로 해.”

ㅤ오스카가 가로막은 손바닥에 대고 웅얼거렸다. 깊은 생각이 느껴지지 않는 대답과 달리 행동에는 고의성이 다분했다. 샤를이 눈을 가늘게 떴다.

ㅤ“그래? 그럼 피아스트리로 하자.”

ㅤ“아까 뭐가 아웃이라고 했지? 묶이는 거?”

ㅤ진심을 한 번 꼬아 능청스러운 농담처럼 건넨 오스카는 금방 눈가를 좁히고 샤를을 쳐다봤다. 연인이 된 뒤로부터 오스카는 한 번씩 성을 불리고 싶어 했다. 불어 억양이 섞인 영어로 발음해 주는 게 좋다는 이유였다. 공감 가진 않아서 들어준 적은 몇 번 없었다. 부른다고 그의 이름도, 자신의 성대도 닳진 않았지만 오스카가 부탁해 올 때면 어쩐지 놀리고 싶어지는 마음에 혀가 무거운 척하고는 했다. 그 외로는 피아스트리보다 오스카가 더 마음에 든다는 사소한 이유가 있었으나 피아스트리로 불리고 싶어 하는 남자가 알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ㅤ“알았어, 잘해볼게. 잘하면 되는 거잖아.”

ㅤ고집스러운 눈빛 끝에 미소 지은 오스카가 말했다. 손에는 보이지 않는 백기가 들려 있었다. 성으로 불리는 걸 듣겠답시고 일부러 상황극을 망쳤다간 아예 끝이라는 걸 아는 이의 체념이었다. 갑작스레 시작된 미니 게임에서 이긴 샤를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ㅤ“다음 프랙티스까진 2시간 남은 거지?”

ㅤ“그래.”

ㅤ고개 숙인 그가 경기에 들어가기 직전, 심호흡하는 것처럼 크게 숨을 내쉬었다.

ㅤ“2시간이면 싸울 시간도 아깝겠네.”

ㅤ“그렇지.”

ㅤ“근데 왜 항상 내 말을 안 듣는 거야? 내 경력이 짧아서 그래?”

ㅤ두 번째 슬레이트가 내려간다.

 

ㅤ#take.2

ㅤ“이번에는 내 말대로 해. 내 분석이 더 정확해.”

ㅤ“운전하는 건 나야.”

ㅤ“그래, 그래서 여태까지 다 맞춰줬잖아. 더 이상은 안 돼.”

ㅤ양손으로 샤를의 하관을 감싸듯 쥔 오스카가 엄지로 단단히 뺨을 고정했다. 아이가 다른 곳을 보지 못 하도록 하는 듯, 귓불 근처의 턱뼈로부터 누르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대로 틈을 좁혀 입 맞춰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거리에서 오스카는 말없이 상대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관찰당하는 건 으레 있는 일이었으나 속눈썹을 셀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흔치 않았다. 보통 이 정도로 가까워지면 당연하게 키스로 넘어갔기에.

ㅤ“난 네 고집을 들어주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야.”

ㅤ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오스카가 속삭였다.

ㅤ“네가 하는 건 고집이 아니고?”

ㅤ샤를이 망설임 없이 받아쳤다. 상황극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투가 삐딱하게 나갔다. 싸우자고 했더니 당연하게 제가 옳다는 식으로 선수 친 설정값이 마음에 들지 않다가도 흥미가 솟았다. 그리드 안팎으로 분쟁을 만들지 않는 드라이버라고 해서 평화를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걸려 오는 싸움은 결코 피하는 일이 없는 샤를은 사실, 누군가가 제게 덤벼드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턱을 붙잡고 있는 손을 쳐냈다. 이마를 맞댈 만큼 가까웠던 거리가 훅 벌어진다.

ㅤ“내가 하는 건 설득이야.”

ㅤ그러자 오스카가 곧바로 손목을 잡아 왔다.

ㅤ“난 언제나 너를 이해하려고 했어. 근데 넌 아니잖아.”

ㅤ내뱉는 음절 하나하나에는 꾹 참은 것 같은 감정이 실려있었다. 샤를은 아주 잠깐 오스카가 평소에 제게 어떤 불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만 했다. 오스카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비아냥거리고 말았지, 뒤끝을 부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런데 눈앞의 레이스 엔지니어에게는 제게 오랜 감정이 있는 것 같았다. 경찰을 흉내 낼 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몰입이 좋았다. 너드라 그런가?

ㅤ“샤를, 넌 나를 믿지 않아.”

ㅤ다시금 거리를 좁힌 오스카가 귓가에 속삭였다. 샤를이 어깨를 움찔했다. 빛이 없는 곳에서 까맣기만 한 눈동자가 반쯤 뜨인 채 흔들림 없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ㅤ…상황극, 맞겠지?

ㅤ미란다 원칙을 읊을 때와 비슷한 위화감이 훅 끼쳤다. 낯선 남자를 두고 샤를의 입장은 이번에도 똑같았다. 오스카가 어떻게 굴든 몰입을 깨는 게 나일 수는 없다. 물론 팀탐 관해서는 빼고. 그건 무조건 오스카가 잘못이었다. 침묵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눈가를 찡그린 그가 크게 한숨 쉬었다.

ㅤ“우린 팀인데 네가 그럴 때마다… 솔직히 답답해.”

ㅤ샤를의 눈이 커졌다. 방금 짜증 낸 건가? 끓는 점이 낮은 오스카는 화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다. 억지를 부려도 웃으면서 넘겼고 유치하게 투닥일 때는 알아들었다면서 삐진 척하다가 저가 부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대답했다. 다 보이는 속내로 어리숙하게 접근하다 못 이기고 고백했던 오스카는 막상 시작된 연애에서는 한없이 익숙하고 능청스럽게 굴었다. 당장 눈 하나 깜짝 않고 같은 팀이지 않냐고 하는 지금처럼. 예민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레이스에서일 뿐, 트랙에서 벗어나는 순간 평상시의 온도로 돌아오는 남자의 짜증은 색다르게 샤를을 흥분시켰다.

ㅤ“네 셋업은 너무 안전하기만 하니까 그렇지.”

ㅤ붙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뻗어 오스카의 어깨에 얹었다가, 그의 목에 걸린 헤드셋을 잡아끌어 뺐다.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 헤드셋이 둔탁한 소리를 내도 오스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에는 옅은 분노가 느껴졌다. 아끼던 물건이었나, 생각하던 샤를은 뒤늦게 오스카가 왜 불쾌해하는지 깨달았다. 누구보다 빠르게 이 상황에 몰입한 남자는 자신의 셋업이 안전 따위의 말로 반박된 게 분했던 것이다. 이래놓고 수요층을 모르겠다는 말은 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ㅤ핏대가 선 그의 뺨 어딘가에 손을 올려 그대로 입을 맞췄다. 반쯤은 충동적인 행위였으나 인내심이 바닥난 건 샤를만이 아니었다. 벌어진 입술 틈으로 혀가 얽혔다. 샤를은 유독 앞니가 긴 그의 치열을 훑는 게 재밌어서, 오스카와의 키스를 좋아했다. 그에게는 평생 말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한참 전에 달아올라 있었을 손이 이번에야말로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모나코만큼 햇살이 따뜻한 곳에서 태어난 남자는 몸에 열이 많았다. 흉통을 쓸고 올라가 가슴에 닿은 손이 노골적으로 끝을 괴롭혔다. 평소엔 아무런 감흥도 없는 그게 이상하게 섹스만 하면 이상하고 민감하게 느껴졌다. 밀려드는 쾌감이 자꾸만 호흡에 섞였다.

ㅤ“…그럼 내 말대로 하는 거지?”

ㅤ숨을 쉬기 위해 입술이 떨어진 틈을 타 샤를이 말했다. 신음을 누르기 위함이었다. 관계 중에 떠들어 대는 말들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샤를은 오스카와 자고 난 뒤로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다른 게 아니라 오스카가 너무 조용했다. 원래도 말수가 많지 않았던 남자는 침대 위에만 올라오면 입을 꾹 다문 채 허리만 열심히 움직였다. 아주 가끔씩 욕설을 내뱉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귀 기울여야 겨우 들리는 수준이었다. 샤를이라고 시끄러운 타입은 아니었으나 혼자서만 공백을 채우는 게 몇 번 반복 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신경 쓰였다. 그렇다고 넌 왜 소리를 안 내냐 묻기도 좀 이상해서, 샤를은 숨이 가빠질 때마다 괜히 말을 꺼내는 걸로 신음을 누르고는 했던 것이다.

ㅤ“이렇게 쉽게 넘어가려고 하지 마.”

ㅤ설득력 있는 말은 아니었다. 조금만 감정이 요동쳐도 기분과 상관없이 쉽게 홍조가 오르는 오스카는 다른 것도 비슷했다. 후드로 미처 가려지지 않은 목은 찌르면 피가 흐를 것처럼 시뻘겠다.

ㅤ“내 눈엔 넘어가고 싶은 것처럼 보이는데.”

ㅤ아니나 다를까 아랫입술이 대놓고 말려 들어간다. 구겨진 미간에서는 그의 갈등이 보였다. 역할극을 시작하고서는 처음 보이는 모습이었다. 승리를 직감한 샤를이 보란 듯이 웃었다.

ㅤ“포기해, 오스카. 난 경치 구경하려고 그 차에 타는 게 아니야. 그건 너도 알잖아.”

ㅤ여전히 아랫입술을 씹고 있는 남자가 살짝 턱을 들었다. 은근히 생각하는 게 다 보이는 오스카가 진정 표정을 숨기고 싶을 때 쓰는 방법이었다. 샤를은 몰입에서 이기고자 가볍게 던진 말이 오스카의 스위치를 제대로 눌렀음을 직감했다. 손을 갖다 대지 않아도 잔뜩 흥분한 게 눈에 보였다. 이래서 F1드라이버란. 샤를이 속으로 탄식했다. 세상에 그들만큼 단순해서 편하다가도 이해하기 어려운 족속이 또 있을까.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는 샤를도 결국 F1드라이버라서, 이런 말에 발기하는 남자의 흥분을 이해해 버린다는 것이었다. 이끌리듯 입을 맞췄다. 당연하게 얽히려는 그의 혀를 두고 소리 나게끔 입술에만 쪽쪽거렸다.

ㅤ“넌 지금 레이스 엔지니어잖아. 여기선 레이엔이 할 법한 말을 해야지.”

ㅤ몸과 몸이 붙은 틈을 타 샤를의 바지춤을 내리려던 오스카의 손이 멈췄다. 샤를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ㅤ“…아직도 중요해?”

ㅤ“당연하지.”

ㅤ유치한 입맞춤부터 그를 놀릴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정말로 놀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짜증 내고 예민한 오스카가 좀 더 보고 싶었다. 할 때만큼은 좀 더 자기 마음대로 굴었으면 좋겠다. 마저 손을 움직여 허벅지를 애무하기 바쁜 남자에게 그럴 정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토록 몰입감 넘치던 연기가 흥분으로 엉망이 되는 꼴은 그것대로 볼만할 것 같았다.

ㅤ“우리는, 음, 데이터가 필요해.”

ㅤ아니나 다를까 직전에 늘어놓던 말에 비해 형편없는 대사였다. 역할극을 꺼낸 입은 어디 가고 당장 목덜미를 물고 빨기 바쁜 그의 턱을 감싸 끌었다. 밑으로 쭉 내려가던 바지가 발목에 걸린다. 그것을 보지도 않고서 한쪽 발을 빼낸 샤를은 저를 벽 쪽으로 몰아붙이듯 파고드는 오스카를 끌어안았다. 거울에 닿은 등과 바지가 벗겨진 아래에 차가운 공기가 닿았으나 싫지 않았다. 나름 치웠다고 생각한 화장대의 물건들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그 소음마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고하는 효과음으로만 들렸다.

ㅤ“팀메이트 몫까지 계속 비교해야 하고…….”

ㅤ느릿한 말과 달리 다리 사이를 차지하고는 하체를 밀어붙이는 허리는 급하기만 하다. 떨어져 있는 틈조차 아깝다는 듯한 몸짓이었다. 아직 벗지 않은 오스카의 헐렁한 팬츠 너머로는 단단해진 성기가 느껴졌다. 간만에 해서 그런가 자꾸만 웃음이 샜다. 그가 좀 더 닿아오기 편하도록 기꺼이 다리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런 사소한 허락은 놓치지 않는 오스카가 무릎 뒤로 손을 집어넣었다.

ㅤ“해서 이번 프랙은….”

ㅤ“계속 말해.”

ㅤ점점 조용해지려는 남자를 재촉했다. 집중을 위해 감기려던 눈이 힘겹게 뜨인다. 시선이 마주친 샤를이 손을 뻗어 오스카의 윗옷을 벗겼다. 그러면 오스카는 또 순순히 고개를 숙여 옷을 벗기기 편하게끔 했다.

ㅤ“셋업을 그대로 쓸 거라면 타이어를 아낄 필요가 있어.”

ㅤ요청대로 레이스 엔지니어다운 말은 덤이었다. 슬슬 제멋대로 굴 법도 하건만 오스카는 미련 맞을 만큼 연인의 부탁인지 명령인지 모를 것을 해내려 들었다. 그런데 그게 또 싫지 않았다. 짜증 내는 게 보고 싶어서 고집부리던 게 어느샌가 무슨 말을 해도 순응하는 남자를 보는 재미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변덕이었으나 자신이 책임질 필요가 없어서, 바뀌어야 한다는 심각성도 느끼지 못했다.

ㅤ“그러니까 이번 프랙티스에서는….”

ㅤ이제 막 옷을 벗고 몸을 만진 걸로 벌써 흉통까지 새빨갛게 물든 남자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ㅤ“…음, 일단 리코를,”

ㅤ그렇게 말이 끝나는 것보다도 먼저 힘이 실린 무언가가 오스카의 얼굴에 명중한다. 불과 몇 초 전에 샤를이 벗긴 남색 맨투맨이었다. 시야를 가리는 푹신한 충격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던 오스카는 금방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는다.

ㅤ“옷, 다시 갈아입고 와.”

ㅤ샤를이 으르렁거렸다.

ㅤ두 번째 NG였다.

 

 

*

 

ㅤ“일부러 이거 입힌 거지.”

ㅤ“글쎄?”

ㅤ침대 헤드에 기대듯 누워있던 샤를이 휴대폰을 들었다. 뒷면에 달린 카메라가 노골적인 구도로 상대를 향했다. 찍히고 있음을 직감한 오스카가 삐딱하게 섰다. 이윽고 샤를이 만족스럽게 자신의 휴대폰에 찍힌 것을 확인했다. 얼굴에는 언제 화 났냐는 듯 흡족스러운 미소가 번져 있었다. 항의하듯 두 팔을 벌리고 있던 오스카가 이내 힘없이 늘어트렸다. 그때까지도 벗지 못한 팬츠에서는 바람 빠지는 듯한 퍽 소리가 났다. 그다지 이길 생각이 없던 오스카는 샤를이 딱히 이기려고 하지 않을 때도 알아서 백기를 들고는 했다.

ㅤ“인스타에 올릴 거야?”

ㅤ“걱정마. 내가 미치는 일이 있어도 인스타는 지우고 미칠 거니까.”

ㅤ“아쉽네, 올리면 지금 나오는 기사 절반이 묻힐 텐데.”

ㅤ어깨를 으쓱인 오스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흰색 매트리스가 출렁거렸다. 농담에는 진심이 섞여 있었다. 샤를이 허리를 세워 앉아 자신의 발치에 앉은 상대를 마주 보았다.

ㅤ“페라스트리가 된 기분이 어때.”

ㅤ“찌라시가 전부 사실이 됐으면 난 작년에 이미 레드불 갔다니까.”

ㅤ이번에도 갈아입은 옷이 불만족스럽다는 목소리였다. 그가 또 한 번 갈아입은 옷은 페라리의 팀 유니폼이었다. 3년씩이나 입어서 괜찮아 보이는 거지, 딱히 주황색이 어울린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으나 막상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미친 듯이 어색하기만 했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합성으로만 존재할 것 같은 비밀스러운 실물에 샤를이 웃음을 터트렸다.

ㅤ“이탈리아어는 언제 배울 거야?”

ㅤ“재미없거든.”

ㅤ일부러 뾰족하게 말한 오스카가 자신의 티셔츠 앞섬을 잡아당겼다. 잘못 세탁하면서 줄어든 그게 목을 조금 죄이는 것 같았다.

ㅤ“그래서 우리는 사이가 좋은 건데, 나쁜 건데?”

ㅤ상대를 힐끔거리던 오스카가 슬그머니 침대 매트리스를 짚었다. 끔찍한 라이코 발언이 나온 두 번째 필름을 가차 없이 자른 샤를이 이번에 다시 고른 것은 팀메이트였다. 열기가 더 식기 전에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오스카의 모습에 샤를이 괜히 고민하는 체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클래식하게 여겨지는 조합이라는 건 그럴듯한 명분이었을 뿐, 진짜 목적은 리코 같은 소리를 지껄인 오스카를 놀리는 게 전부였다. 그조차도 휴대폰 갤러리에 남겨두는 것으로 목표를 달성한 샤를로서는 더 떠오르는 게 없었다.

ㅤ“일단 너나 나나 팀 오더로 싸울 일은 없을 거 같은데.”

ㅤ“그건 그렇겠지.”

ㅤ그즈음에는 샤를이 있는 곳까지 다가온 오스카가 아무렇지도 않게 샤를을 뒤로 넘어트렸다.

ㅤ“근데 나 팀메이트랑은 안 자.”

ㅤ그 손길에 이끌려 순순히 뒤로 누워준 샤를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샤를의 말이 끝나자마자 미간을 좁힌 남자가 곧 이해했다는 듯 코웃음 쳤다.

ㅤ“또 그렇게 빠져나가시겠다?”

ㅤ“내가 뭘?”

ㅤ“뭘 해도 상관없는데 그런 건 봐줘. 너 꼬시기 진짜 어렵거든.”

ㅤ오스카의 말을 뒤늦게 이해한 샤를이 그를 따라 웃었다.

ㅤ“왜? 또 포디움 따고 기자들 다 있는 데서 데이트 신청하면 되잖아.”

ㅤ“그럼 더 안 받아줄 것 같은데.”

ㅤ“오, 이젠 아는구나.”

ㅤ이번에 어깨를 으쓱이는 건 샤를이었다. 허리를 숙인 오스카가 다시금 샤를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살이 빨리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눈가가 찌푸려졌다.

ㅤ“아무리 그래도 같은 팀일 때는 못 하지. 같은 차 타고 진 팀메이트한테 어떻게 그래.”

ㅤ별생각 없어 보이는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순순히 감아주려던 눈이 번쩍 뜨인다. 아이를 달래듯 오스카의 뺨과 목 어딘가를 쓸어내리던 샤를이 돌연 그의 어깨를 붙잡고 쭉 밀어냈다.

ㅤ“잠깐만, 내가 진다고?”

ㅤ“모나코에서 포디움 따고 고백하라며.”

ㅤ이번에도 샤를이 미는대로 쭉 밀려난 오스카가 말했다. 뭐가 문제냐는 듯한 말투였다. 어이가 없어진 샤를이 허, 하는 숨을 내뱉었으나 평온한 오스카의 표정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ㅤ“모나코는 내가 항상 너보다 빨랐던 거 알지.”

ㅤ아무래도 상대가 단단히 잊은 듯한 사실을 콕 짚었다. 그러자 내내 고분고분하게 굴던 남자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ㅤ“그래서 내가 질 것 같아?”

ㅤ“응.”

ㅤ샤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ㅤ“난 안 져.”

ㅤ“나도 안 져.”

ㅤ샤를이 노골적으로 오스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ㅤ“내가 페라리를 몇 년 탔는데, 너한텐 안 지지.”

ㅤ여러 의미로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남자를 깔보기엔 충분한 말이었다.

ㅤ“난 그냥 안 져.”

ㅤ아예 몸을 뒤로 물린 오스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ㅤ“난 팀메이트한테 한 번 밖에 져본 적 없어.”

ㅤ“그럼 내가 두 번째로 너를 이긴 팀메이트가 되겠네.”

ㅤ“지금 있는 팀메이트부터 제대로 이기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이거 하지 말자.”

ㅤ“응, 그래 다른 거 하자.”

ㅤ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열기가 모든 것을 압도해버리기 직전에 샤를이 급하게 말을 바꾸고, 비슷한 공기를 느낀 오스카가 냉큼 동의했다. 다음에는 침묵이 이어진다. 멈추긴 했는데, 망하지 않았다고 하기엔 애매하게 이어지는 분위기에서 오스카가 먼저 페라리의 유니폼을 벗었다. 익숙한 버릇으로 허물처럼 바닥에 두었다가, 아차 하고는 주워서 침대 구석에 밀어놓는 남자의 행동에는 어떠한 섹슈얼함도 없다. 오늘은 이대로 끝이군. 샤를은 직감했다. 미처 분출되지 못하고 사그라든 흥분이 답답하게 응어리진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집에 있는데 자위로 빼는 게 맞나 싶어질 즈음이었다.

ㅤ“있잖아.”

ㅤ오스카가 입을 열었다. 샤를은 눈만 움직여 듣고 있다는 티를 냈다.

ㅤ“여태까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까 이번엔 내가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ㅤ“뭐?”

ㅤ샤를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끝난 게 아니었다고? 그러자 오스카가 덩달아 뭐가? 하고 되물었다. 무엇이 문제냐는 얼굴은 처음부터 망친 건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았다. 샤를은 각기 다른 이유로 엎어진 세 가지 롤플레잉, 그중에 마지막은 시작도 못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다 말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ㅤ“나 수갑은 싫어.”

ㅤ“다시 경찰로 돌아가자는 거 아니야.”

ㅤ“…그럼 설마 이번엔 진짜 내가 너를?”

ㅤ미간을 찌푸린 샤를이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난 제복도 어울릴 자신 있긴 한데. 이어진 농담에 오스카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개그가 목적이었던 샤를도 금방 표정을 풀었다. 일터에 대한 낭만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 오스카가 무슨 플레이를 꺼낼지는 알 수 없었으나 호불호가 명확히 생긴 지금은 뭐가 나오든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샤를은 듣고 아니다 싶으면 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 오스카가 자신의 코끝을 매만졌다.

ㅤ“뭐 특별한 건 아니고, 그냥, 네가 좀 더 거칠었으면 좋겠어.”

ㅤ“응?”

ㅤ“말이든, 뭐든 상관없어.”

ㅤ오스카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은은한 미소가 이제는 설레 보이기까지 했다.

ㅤ“그건… 널 때려달라는 뜻이야?”

ㅤ샤를은 자신이 말하고서도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이해한 게 맞긴 한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와, 진짜 아니었으면 좋겠다. 확실한 것은 자신감이 꺾이기까지 3초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늘 언제나 그렇듯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는 남자는 눈만 위로 굴리며 고개를 가볍게 움직였다.

ㅤ“내가 생각한 건 좀 더 솔직한 더티톡이긴 했는데, 그러고 싶으면 해. 맞아보니 좋을 수도 있지.”

ㅤ그게 그렇게 가는 영역이냐고,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져 묻기도 전에 침대를 짚은 오스카가 단번에 거리를 좁혔다. 아닌, 아닌 거 같은데.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은데. 반사적으로 다가오는 남자의 목 뒷덜미를 감싸며 생각했다. 그런 속내를 알 리 없는 오스카가 웃었다. 저 혼자 허락으로 여긴 게 분명했다. 울컥하는 마음에 걷어찰 타이밍을 놓친 게 화근이었다. 역시 아닌 거 같다고, 다급하게 외치기도 전에 샤를의 의사와 상관없는 세 번째 슬레이트가 내려갔다.

 

ㅤ#take.3

ㅤ혀가 물고 빠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린다. 손 하나 깜짝 안 하고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던 샤를이 밑에서 벌어지는 일을 봤다가,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오스카가 다소곳하게 자리 잡은 곳은 자신의 다리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자세를 낮춰, 자신의 다리를 어깨 위에 걸치게끔 한 남자가 다음으로 할 짓은 뻔했다. 샤를은 거칠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과 달리 평소와 다름없이 전희를 시작하는 오스카의 태도에 속아 넘어간 몇 분 전의 자신을 저주하고 싶었다.

ㅤ대신 자위 해주는 적은 많아도 입으로 해주는 건 없다시피 했다. 샤를은 아예 해준 적이 없었고 오스카만이 아주 가끔, 자진해서 내려갔다. 그 이유가 허릿짓 하는 걸 보는 게 재밌어서라는 걸 안 다음부터는 내려갈 조짐이 보이거든 걷어찼다. 그러면서도 한 번씩 못 이기는 척, 오스카가 선사하는 좁고 따뜻하며 말랑해서는 조이기도 하는 안쪽에다 기꺼이 박아 넣고는 했는데, 그때 샤를을 진정 흥분시키는 것은 헛구역질을 참은 끝에 목을 붙잡고 자신을 노려보는 오스카의 눈빛이었다. 재밌다고 말한 남자가 아주 가끔씩만 하는 이유였다. 그러니까, 오스카라고 아래에서 무릎 꿇고 남의 성기를 기쁘게 빨아주는 성질머리는 못 됐던 것이다. 그것도 생리적인 혐오감도 아니고 타고난 승부욕 때문에 말이다. 샤를은 그게 좋았다. 지금처럼 잘해주려고 긴장하고, 기대하다 못해 조심스럽게 바지를 벗기는 모습이 아니라.

ㅤ샤를이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ㅤ혼란스러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순종과 복종이라는 갑작스러운 키워드는 당황스럽다 못해 무섭게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처음부터 경찰을 고른 것도 다 이걸 위한 빌드업이었던 걸까? 근데 경찰을 흉내 낼 때도, 레이스 엔지니어를 시켰을 때도 오스카는 통제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극단적인 부정은 긍정이 되기도 한다더니 그런 케이스인가? 그러니까 멜, 멜섭, 뭐 그런 거야? 오스카가 멜섭이라고?

ㅤ얕은 지식은 샤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금이라도 그를 성으로 불러야 하는지 고민됐다. 잘 해내고야 말겠다는 우등생으로 탈바꿈한 남자는 미쳤냐는 말로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기록의 경쟁을 치르는 F1드라이버에게 통제적인 성향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샤를은 그게 심한 편은 아니었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차에 스트레스받는 건 보통 사람들도 겪는 감정이었고, 샤를의 통제 성향이란 루틴대로 훈련하며 식단을 조절하는 선수로서 생긴 틀에 더 가까웠다. 즉, 남에게 어떤 규칙을 요구하거나 강요할 정도가 못 됐다. 그런데 오스카는 통제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통제라는 게 뭐였더라? 급기야 알고 있는 단어의 정의까지 헷갈리던 그때였다. 허벅지 안쪽으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ㅤ“아!”

ㅤ반사적으로 소리를 낸 샤를이 미간을 찌푸렸다. 상체를 들어 확인한 아래에서는 일부러 아프게끔 깨문 오스카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맞춰왔다. 자신이 입고 있던 바지는 어느새 침대 밑으로 떨어져 있었다.

ㅤ“집중 못 하는 것 같길래.”

ㅤ“거칠게 해달라면서 뭐 하는데.”

ㅤ“너도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ㅤ오스카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예전부터 자국이 남는 것에 예민한 샤를과 달리 오스카는 개의치 않아 했다. 저만큼은 아니라 해도 홍보에 어마어마한 계약금과 위약금이 걸려 있는 드라이버치고는 제법 무책임한 태도였다. 불쑥 괘씸함이 뭉쳤다.

ㅤ“나한텐 남의 자지 빨아주는 취미는 없어서.”

ㅤ주어가 다른 줄 알면서도 고간에 얼굴을 대고 있는 남자를 비꼬았다. 오스카의 아래턱이 삐걱이듯 움직였다. 대개 두 가지 경우였다. 아주 마음에 들거나, 아주 마음에 안 들거나. 샤를은 내심 오스카가 포기하고 올라오길 바랐다. 역시 제가 잠깐 이상했던 것 같다고, 이런 취급은 기분 나빠서 못 하겠다고 하길 바랐다. 그러나 오스카는 속옷을 벗지 않은 사타구니에 입을 갖다 댔다. 얇은 천을 두고 두툼하고 부드러운 자극이 느껴졌다. 티 나지 않게 입안을 깨문 샤를이 아예 그의 뒷머리채를 잡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ㅤ“다른 사람들은 네가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알아?”

ㅤ“나만 좋아하는 거 아니잖아.”

ㅤ“근데 아까부터 왜 자꾸 말대답해? 거칠게 해달라고 했으면서?”

ㅤ“미안.”

ㅤ억지로 고개를 젖힌 오스카가 순순히 사과해 왔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자신이 수위가 아슬한─평소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굉장히 위험했다─더티톡을 하는 건 둘째 치고, 오스카의 반응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샤를이 붙잡았던 머리채를 놓았다.

ㅤ“앞으론 너한테 다 허락받고 할게.”

ㅤ예의 있게 굴겠다고 말하는 내용과 달리 말투에는 비꼬는 기색이 가득했다. 피해망상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오스카는 악취미적인 언어 습관을 못 버리고 있었다. 한쪽만 올라간 입꼬리가 그 증거였다. 그걸 눈치 못 챌 만큼 샤를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리는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위화감 다음으로 느껴지는 건 기시감이었다. 샤를은 제게 이길 생각이 없는 남자가 이토록 건방지게 굴 때를 이미 알고 있었다.

ㅤ“뭐할까? 허벅지에다가 입 맞추는 건 계속 해도 돼? 거긴 네 성감대잖아. 아까처럼 안 깨물,”

ㅤ오스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찌푸려진 눈가가 그대로 감겼다. 갑작스레 성기에 느껴진 자극 때문이었다. 샤를이었다. 얌전히 있나 싶었던 샤를이 다리를 뻗어 그 끝으로 오스카의 중심부를 만져왔던 것이다. 그때까지도 입고 있던 팬츠 안에서 자극만을 기다리고 있던 성기에 쉽게 피가 몰렸다. 오스카의 손이 샤를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게 더 만져주길 바라는 손짓이라는 걸 안 샤를이 헐렁한 천 너머로 윤곽이 잡혀가는 것을 쓸었다.

ㅤ“그렇게 좋아?”

ㅤ오스카가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ㅤ“말로 해 봐.”

ㅤ감긴 눈이 게슴츠레 뜨인다. 점점 붉어지는 얼굴에서도 여전히 까만 눈동자와 마주쳤다. 입으로 해주기 위해 숙였다가, 풋잡 때문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남자가 돌연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입을 벌린 건 샤를의 입술에 닿은 다음이었다. 양손으로는 다시금 샤를의 뺨을 쥔 오스카가 질척거리는 소리가 울리도록 혀를 섞고, 아래를 비벼왔다. 성기를 꺼낼 손 하나가 더 없는 게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 중에 가장 흥분한 오스카를 느끼던 샤를이 먼저 고개를 뒤로했다. 거리를 벌린 만큼 오스카가 다가오면 아예 밀어냈다.

ㅤ“말로 하라고 했지 누가 키스하래.”

ㅤ“응, 미안.”

ㅤ거부당하자 바로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오스카가 웅얼거렸다. 그즈음엔 참기가 힘들었던 샤를이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ㅤ“오스카, 너 진짜!”

ㅤ정체를 드러낸 위화감과 기시감이 사르르 녹는다. 그에게 짜증 내고 내키는 대로 명령했다. 예의 없이 굴고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샤를은 멜섭이 뭔지 잘 몰랐지만, 적어도 그게 막 대해질 때마다 이기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다. 거칠게 대해 달라던 남자는 내내 레이스를 앞둔 표정이었다. 이길 시도조차 하지 않고 고분고분하게만 굴던 오스카가, 이기고 싶어서 죽겠다는 얼굴로 웃으며 덤벼들었다. 거친 것을 원한다던 오스카는 사실 저를 억누르는 손길을 꺾지 못해서 안달 나 있던 것이다. 그걸 스스로에게 피학적인 성향이 있다고 착각한걸 걸로 모자라 맞는 게 기분 좋을 수도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둔 건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ㅤ끙끙거리는 그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속옷 안의 성기에서는 프리컴이 질질 샜다. 평소 감각이 둔한 오스카는 젖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졸린 듯 눈가를 비비며 콧대를 뭉개던 오스카가 이를 세웠다.

ㅤ“물면 바로 그만둘 거야.”

ㅤ샤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오스카는 고개를 틀어 목 근처 어딘가를 노골적으로 핥고 빨았다. 축축하고 뜨거운 살덩어리가 뭉개지는 감촉을 느끼던 샤를은 아주 잠깐, 지금이라도 못 이기는 척 오스카의 봉사를 받아들일까 고민했다. 더 이상 몸을 뒤로 할 수 없도록 단단히 끌어안고 있던 오스카의 손이 샤를의 허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사타구니 근처의 허벅지를 쓸던 손길이 향하는 곳은 샤를이 지금 하고 있는 짓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ㅤ“읏, 하아…….”

ㅤ샤를이 들뜬 숨을 내뱉었다. 조용한 주제에 듣기는 좋아하는 오스카가 더 노골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부드럽게 쓸어올리다가 귀두 부근에서 꽉 쥐었다. 샤를이 좋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샤를은 지지 않고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로 훑어내렸다. 체중을 실은 건 오스카의 쪽이었다. 귓가에 쏟아지는 거친 호흡을 듣던 샤를은 순순히 뒤로 넘어갔다. 그의 무게로 사이가 짓눌리고, 복근 사이에 낀 살덩어리들이 비벼진다. 사정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스카가 먼저 욕을 내뱉은 다음에는 샤를이 다리 하나를 접어 세웠다. 누구 것인지 모르게 섞인 정액이 진득하게 손 위로 흘러내렸다.

ㅤ제 위에서 나른하게 숨 쉬던 오스카가 금방 탁상 옆에 놓인 티슈를 뽑아 들었다. 사정의 여운에서 노곤해진 샤를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특히 남자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쥐고 흔들면서 마디 사이사이를 타고 흐르는 정액이 끈적하게 늘어진다. 그걸 닦은 건 오스카였다.

ㅤ“너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ㅤ정성스러운 남자의 손길을 받으며 말했다.

ㅤ“응, 아니, 못 하겠어.”

ㅤ반사적으로 대답하던 오스카가 말을 바꿨다. 푸스스 웃는 특유의 바람 빠진 소리가 섞인 대답이었다.

ㅤ“왜?”

ㅤ샤를이 집요하게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도 배려 따위를 입에 담는다면 어디 가선 쉽게 이해받지 못할 성향을 낱낱이 까발려줄 생각이었다.

ㅤ“난 네가 시끄러운 게 좋은데, 한편으로는 입을 막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거든.”

ㅤ“그건… 내 목을 조르고 싶다는 소리야?”

ㅤ그 다짐조차 3초도 가지 못하고 꺾인 샤를이 되물었다.

ㅤ“뭐?”

ㅤ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당장이라도 따질 것 같았던 오스카의 입이 벌어졌다가 그대로 굳었다. 그런 다음에는 입술을 다물고 미간을 좁혔다. 진짜 그런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옷을 잡아당겨 목을 죄었던 오스카의 행위가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ㅤ“나 아픈 건 싫어.”

ㅤ위기감을 느낀 샤를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즈음 누가 그에게 멜섭 같은 되도 않는 소리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올바른 위치에 있다는 게 좋아서, 사냥감이 되는 게 좋다고 말하는 남자의 극단적인 피학 성향은 가학적인 충동과 아주 가깝게 닿아 있던 것이다.

ㅤ“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어.”

ㅤ오스카가 말했다. 아무리 봐도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았으나 더 파헤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오스카의 착각을 정정해 주는 사람이 나타날지언정 그게 자신이 될 생각은 없었다.

ㅤ“맞는 것도 싫어.”

ㅤ그래서 샤를은 제게 필요한 것만 말했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오스카는 서랍을 열어 가지런히 정렬된 콘돔 박스를 뒤적였다. 도무지 열이 빠질 줄 모르는 둥근 어깨를 바라보던 샤를이 말을 이었다.

ㅤ“하지만 오늘은 깨무는 것까진 봐줄게.”

ㅤ늘 언제나 그렇듯 온전한 이해가 느린 오스카를 두고 웃었다. 그 모든 발언과 다짐과 생각이 무너지기까지 3초는 넘게 버틴 샤를이 다급하게 NG를 외쳤을 때에는 여러모로 늦은 다음이었다.

 

 

*

 

ㅤ“다음엔 이딴 거 절대 안 해.”

ㅤ침대에 늘어진 샤를이 단호하게 말했다. 시트에 닿는 유두가 따끔거린다. 깨무는 걸 봐준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가슴을 빨아온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불쾌함이었다. 다리가 접혀서 뭉개지는 건 상관 않고 허릿짓하는 그에게 당하며 샤를은 그의 성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 자체가 세지는 않았으나 기본적으로 오스카는 사람을 막 다루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만은 넘어간다는 허락 아래에 그는 내키는대로 자신의 몸을 접고, 들어올렸다가 깔고 뭉개고 짓눌렀다. 그게 경험 부족에서 오는 미숙함인지, 일부러인지 확신이 안 서는 게 제일 열 받는 부분이었다. 무조건 후자여야 하는데, 전자의 가능성을 무시 못 하는 게 오스카라는 남자였다.

ㅤ“알았어.”

ㅤ이 모든 일의 주범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의만 다시 챙겨 입은 오스카는 곳곳에 떨어진 옷가지를 줍고 있었다. 정리와 담쌓은 오스카는 샤를의 방에서 통용되는 규칙만큼은 잘 지켰다. 그래봐야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걸 주워서 한 옆에 모아둔다는 게 전부긴 했으나,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청소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미룬 샤를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ㅤ“이제 색다른 거에 대한 것도 좀 잊고….”

ㅤ잇따른 절정으로 피곤한 눈이 차츰 감겼다.

ㅤ“그러고 보니까 그거 뭐였어? 대디플이 아니라고 해서 그냥 질린 거구나 했는데.”

ㅤ그렇게 잠이나 자려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다시 본 오스카는 바닥에 떨어진 콘돔 포장지까지 나름 꼼꼼하게 치우고 있었다.

ㅤ“그래도 효과 좋은 거 같아서 다행이야. 찾아보니까 매너리즘 극복에는 새로운 시도가 좋다더라.”

ㅤ뒤처리의 임시방편으로 쓰인 티슈에 감싸인 것들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샤를은 아예 팔등으로 침대를 짚어 반쯤 몸을 일으켰다. 자세를 바로 해도 뒷정리를 한답시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오스카는 옆얼굴만 보였다가, 등만 보였다가, 아무튼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게 표정을 보이기 싫어하는 것 같기도 했고, 별생각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근데 매너리즘이라니. 그렇게 잘 즐겨 놓고서? 애초에 질렸다니? 뭐가? 내가??

ㅤ“내가 너한테 질렸다고? 그렇게 생각해서 이런 걸 준비한 거야?”

ㅤ떠오른 걸 그대로 내뱉었다.

ㅤ“권태기라 생각한 건 아니고… 섹스 정도만?”

ㅤ아무렇지 않게 샤를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린 오스카가 고개만 까닥였다.

ㅤ“혹시 권태기였어?”

ㅤ은은한 무드등 불빛에 보이는 얼굴은 언제나와 똑같았다. 졸려 보이고, 나른해 보이고, 아무 생각 없어 보이고, 그런데 또 불빛이 주황색이라서, 그냥 익숙하게 보던 맥라렌 드라이버 같았다. 가장 보통의 모습으로 매너리즘을 꺼내며 이 또한 평범한 일상이지 않냐는 듯 구는 남자를 두고 샤를이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이러다 화를 참을 때의 버릇이 들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ㅤ“좋아, 지금 되게 복잡한 기분이 드는데, 제일 강하게 드는 생각이 널 당장 쫓아내고 싶다는 거니까 지금부터는 내가 묻는 말에 신중하게 대답해.”

ㅤ“음, 알았어.”

ㅤ“넌 내가 혼자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연인한테 질려하다가, 또 아무렇지도 않게 이러는 사람처럼 보여?”

ㅤ“아니긴 한데, 원래 매너리즘이라는 건 갑자기 오기도 하는 거고, 넌 보기보다 마음이 약해서 말 못 할 때가 있으니까, 어, 아니.”

ㅤ차분하게 자신의 논리를 늘어놓던 오스카가 눈치껏 축약했다. 보아하니 신중하게 대답하라는 문제는 서술형 풀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려는 것 같았다. 이건 진짜 화난 거 같은데. 오스카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로 샤를이 연인에게 예의 없는 사람인가 물으면 아니긴 했다. 그러나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고, 사람마다 저마다의 사정과 이야기가 있는 법이었으니. 이러한 맥락으로 오스카는 자신이 놓친 샤를의 면모가 툭 튀어나온다고 해도 딱히 놀랍지 않았다. 샤를의 옆을 노리며 오랜 준비로 침착해졌다기보다는 그런 모습이 나와도 상관 없다에 가깝겠다. 대디플을 제의하는 줄 알았을 때도 그러려니 넘어갔던 것처럼 말이다.

ㅤ“근데 왜 갑자기 매너리즘으로, 그래, 이게 전부 그 색다른 제안 때문이라는 거지.”

ㅤ샤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오스카는 이것도 대답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눈만 굴려 가늠했다. 저보다 훨씬 많은 조명과 카메라 아래에서 사는 사람이라 그런가, 샤를은 사소한 오해도 아주, 아주 싫은 듯했다. 제가 잘못 짚었다고 해도 그 사실로 샤를을 이상하다고 판단하거나 싫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으나 그다지 도움 되는 해명도 아니라는 걸 일찍이 깨달은 오스카는 그냥 조용히 있었다.

ㅤ“내가 그때 말한 건… 별 뜻 없었어.”

ㅤ이윽고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린 샤를이 말을 이었다.

ㅤ“하고 싶은 플레이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질려서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고. 말 그대로 색다른 게 보고 싶었을 뿐이야. 안 그래도 조용하면서 항상 나에게 맞추기만 하니까, 그래서 그냥, 네가 제멋대로 구는 게 보고 싶었어. 그게 전부야.”

ㅤ끝으로 갈수록 힘이 빠졌다. 어쩐지 오스카에 비해 자신이 한없이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 비교해서 주눅 드는 게 얼마만의 감정이었더라. 샤를은 제 잘난 맛에 살진 않아도 그게 얼마나 달콤한지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매너리즘 극복을 위한 솔루션이랍시고 핼러윈 시즌에 경찰 제복을 준비한 눈앞의 너드가 자신보다 어른스러운 연애를 하고 있냐고 물으면 전혀 아니긴 했는데. 아무리 결괏값이 우스워 보여도 오스카가 이 관계를 진지하게 고찰하며 노력한 과정을 부정할 수 없었다.

ㅤ“나 아직도 대답 잘 못하면 쫓겨나는 단계야?”

ㅤ“아슬하긴 한데, 말해봐.”

ㅤ이럴 때일수록 유머를 못 버리는 남자를 따라 샤를도 삐쭉하게 대답했다.

ㅤ“난 네가 오해받는 게 그냥 싫은 줄 알았어.”

ㅤ당연하지. 샤를이 속으로 대꾸했다. 오해받는 걸 좋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ㅤ“그런데 내가 널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싫은 거였구나.”

ㅤ“어?”

ㅤ그게 왜 그렇게 가냐고 따져 물을 새도 없이 품 안으로 오스카가 기어들어 왔다. 엉겁결에 팔을 벌려 그를 안아준 샤를은 눈만 깜빡였다. 자존심도 없는지 몸을 구겨 안긴 오스카한테서는 히죽거리는 웃음소리만 났다. 맥이 풀리는 듯, 안심이 되는 듯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한 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는 시실이었다. 샤를은 어쩌면 자신이 조금 긴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ㅤ“넘겨짚어서 미안해, 샤를.”

ㅤ“아니, 뭐…….”

ㅤ그래서 이게 오스카가 사과할 일이었나? 그런데 또 자기가 사과할 일도 아닌 거 같았다. 애당초 사과를 한 오스카도 그렇게 진심으로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배부른 고양이마냥 굉장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엉겁결에 그와 함께 침대에 벌러덩 누운 샤를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곱씹어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사고회로로 저런 결론을 내었는지 알 수 없었는데, 그래서 틀렸나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ㅤ연인에게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생각되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거고, 어쨌든 옆에서 이러고 있는 건 오스카니까, 오스카한테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되는 게 싫었다는 뜻으로 쓰여도… 되나?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단지 연애에서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다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 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그럼 결국 오스카한테 오해받기 싫었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닌 건가? 정리할수록 오스카가 혼자서 기가 막히게 이해한 것 같기도 하고. 오늘만 벌써 세 번째 이어지는 쉼표와 물음표 끝에 도착한 건 새삼스러운 현실 감각이었다. 와, 내 옆에 있는 게 진짜 오스카구나. 나 진짜 얘랑 사귀고 있구나. 내가 진짜 직장 동료, 그것도 심지어 랜도의 팀메이트이자 후배 드라이버랑 연애하고 있다고?

ㅤ뒤죽박죽 섞이는 심란함도 잠깐이었다. 품에 꼭 안겨서 잠드는가 싶던 오스카가 다리까지 척하니 올려서는 배배 꼬며 감아오던 것이다. 꼭 바디 필로우를 끌어안은 듯한 같은 모양새였다.

ㅤ“…이러고 자겠다고?”

ㅤ“응.”

ㅤ실실 웃는 남자가 눈도 뜨지 않고 대답했다.

ㅤ“불편해.”

ㅤ사귀는 건 사귀는 거고, 편한 잠자리는 또 그것대로 보장받아야 했던 샤를이 오스카를 밀어내려 했으나 이미 다리를 감은 남자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팔의 힘이 강해지는 게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드문 투정이었다.

ㅤ“오늘은 이러고 잘래.”

ㅤ“누구 마음대로.”

ㅤ“제멋대로 구는 게 보고 싶다며?”

ㅤ“생각이 바뀌었어, 넌 이미 충분히 제멋대로야.”

ㅤ한껏 꾸물거리던 샤를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런 동시에 이번엔 진짜로 자신이 내뱉은 게 정답이고 진실이라고 느꼈다. 제멋대로가 아니면 장난으로 꺼낸 입양 소리 그거 하나로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을 수 있었을까? 샤를은 오스카에게 이 정도 거리를 허락할 생각이라곤 타이어 조각만큼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된 건 전부 오스카 때문이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치대던 오스카가 한쪽 눈만 떴다. 그때까지도 웃음으로 접혀서 가늘어진 눈이 무언갈 꾸미는 것만 같다. 그런가 하면 해맑은 아이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오스카의 미소를 빤히 보던 샤를은 뒤늦게 아차 했다.

ㅤ말마따나 오스카는 이미 충분히 제멋대로 굴고 있었고, 그런 자신을 모르지도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모나코의 혈통을 찾겠다고 했을 때부터. 더 나아가 아서를 핑계로 말을 붙여왔을 때부터 오스카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았을지도 몰랐다. 당했다는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게 오늘날이 되어, 제 옆에 누워서는 애처럼 기뻐하고 있는데 더 할 말이 없다는 게 맞겠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쓰러져 누운 샤를은 곧바로 틈을 메우려 드는 오스카가 마음껏 그러도록 그냥 두기로 했다.

ㅤ연인으로서는 그렇게 최악은 아닌 남자가 그래도 조금은 불편하게 잠들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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